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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발레 - 대한민국 대표로 하는 국립발레단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입니다.

코펠리아 Coppelia

코펠리아 포스터이미지
원작
E.T.A. 호프만 (E.T.A Hoffmann)
무대
의상
조명
소요시간
2시간
공연년도
1976년 9월·1978년 4월. 국립극장
19세기 발레 걸작 중 비극의 전형이 「지젤」이라면, 「코펠리아」는 희극 발레의 전형이다. 노과학자 코펠리우스가 만든 코펠리아라는 인형을 마을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으로 착각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결국 인형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모든 것이 평정되지만 그러기까지 일어나는 온갖 해프닝이 작품 내내 웃음을 유발시킨다.


이 작품이 탄생한 19세기 유럽 사회는 급격히 발전하는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지배적이었다. 일도, 가정도 버린 채 실험에 열중하는 초기 과학자들의 모습, 예전엔 마법이라 여겼던 것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비밀이 벗겨지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엔 과학에 대한 흥미와 불신이 공존한다.「코펠리아」가 여느 발레와 가장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면 이런 시대적 정신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국적 풍물에 대한 관심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외국, 특히 동양 국가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발레 작품에도 이국적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 코펠리우스가 만든 인형들이 중국이나 인도의 옷차림을 하거 있거나, 마주르카(폴란드춤), 차르다쉬(헝가리춤), 볼레로(스페인춤), 지그(스코틀랜드춤), 슬라브 민요에 맞춘 바리아시옹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작품 내내 흐르는 장난끼와 반역 정신, 거리낌없이 자신의 느낌대로 행동하는 모습은 프랑스의 국민 기질을 엿보게 한다. 들리브의 음악은 음악 자체만으로도 뛰어나서 콘서트에서도 많이 연주된다.


사실「코펠리아」가 만들어지던 이 무렵은「지젤」로 로맨틱 발레의 꽃이 현란하게 개화해도 파리에서는 서서히 발레의 황혼기를 맞고 있었다. 이 때 발레의 중심 무대가 서서히 러시아로 옮겨지고 있었다. 바로 그 황혼기에서 공연된「코펠리아」는 기울어져가는 프랑스 발레의 마지막 불꽃이자 낭만주의 시대 최후의 걸작이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기울어져가는 발레무대를 다시 되살리려고 했던 파리 오페라 극장은 들리브에게 새로운 발레음악을 작곡해주도록 요청했는데, 그때 들리브가 받은 대본은 눈이 반짝이는 소녀(la fille aux yeux demail; 영어로는 the girl with enamel eyes)였다.


이 발레의 대본은 파리 오페라 극장의 전속대본작가 샤를르 뉘떼르(charles nuitter)에 의해 각색된 것인데, 그는 독일의 이색적인 작가 호프만(e. t. a. hoffmann)의 모래 도깨비(der sandmann)에서 소재를 취해 이 대본을 썼다.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는 이 대본으로 발레를 기획하면서 작곡은 들리브에게, 안무는 셍-레옹에 맡기기로 방침을 세워놓고 있었다. 들리브와 셍-레옹의 콤비는 이미「샘(la source)」에서 대성공을 거둔바 있기 때문이다.


들리브(clement philibert leo delibes)는 1836년 셍 레르멩 뒤발에서 태어났다. 외가의 영향을 받아 음악원에 들어간 그는 17세때 셍 피에르 샤이요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그 후 발레 극장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가 남긴 발레 음악으로는「샘(la source)」「코펠리아」그리고「실비아」등이 있는데, 차이코프스키가 발레음악에 심취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들리브에게 끌리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들리브가 아니었던들 나는 아마 발레음악을 작곡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던 차이코프스키는 들리브의 발레음악이 자신의 발레음악보다 휠씬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비단 차이코프스키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를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자로 꼽고 있지만 누구나「코펠리아」를 들어보면 들리브 이상으로 그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음악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서곡에서부터 막이 내릴 때까지 모든 장면의 하나하나에서 들리브의 음악은 발레의 호흡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코펠리아」가 초연 이후 불멸의 생명력을 갖게 된 것도 음악 때문이라고 평가되고 있지만, 생-레옹 또한 음악의 이미지를 발레에서 훌륭히 살려냈기 때문에 더욱 더 높이 평가되어 왔음을 알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코펠리아」는 음악과 무용이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면서 밀접하게 얽혀있고, 발레를 보면 음악이 떠오르고 음악을 들으면 발레의 동작 하나하나가 연상될 만큼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셍-레옹(arthur saint-leon)은 182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무용과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그는 우선 13세때 바이얼리니스트로서 데뷔했고, 그 이듬해 무용가로 데뷔했다. 이탈리아, 영국, 오스트리아 등에서 무용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나서 1863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발레마스터가 되어 더욱 많은 작품을 안무했지만, 그를 불멸의 존재로 드높여 준 것은「코펠리아」였다.


셍-레옹은 안무를 위임받고 곧 작업에 착수했으나 쇠퇴해가는 프랑스의 발레를 이 작품 하나로 다시 일으켜 세워야한다는 사회적인 요망 때문에 안무도 부분적으로 여러 차례 수정되었고, 연습기간도 늦어져 결국 3년이 지난 1870년에서야 첫 무대를 올릴 수 있었다. 그동안 여주인공 스와닐다를 맡을 발레리나도 여러 차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에는 대본을 쓴 뉘떼르의 강력한 추천으로 레옹틴느 보그랑(leontine beaugrand. 1842~1925)이 스와닐다역으로 예정되었다. 그러나 당시 26세의 보그랑은 청순하고 깜찍한 스와닐다역을 맡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비판이 일어 독일 태생의 발레리나 그란조바(adele granzowa, 1845~1877)로 바뀌었으나 준비기간이 너무 길어지자 기다리다 지친 그란조바는 러시아로 가버렸다.

그래서 1870년 마침내 막이 오르기로 예정되었을 때는 당시 15세의 쥬제피나 보짜키(1853~1870)가 전격적으로 기용되었다. 그녀가 기용된 다음에도 2년후에야 당시 초연이 이루어졌으니 그녀가 그 역을 받았을 때는 16세 6개월때의 일이다. 당시 천재 소녀 발레리나로 화제를 모았던 보짜키는 16세를 조금 넘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량과 귀여운 외모와 함께 깜찍한 연기로 파리 시민의 절찬을 받았다. 코펠리아 공연이 대성공을 거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1870년 5월에 공연된 후 7월까지 불과 2개월동안 보짜키는 무려 18회나 스와닐다역에 출연할 만큼 대단한 인기였으나 7월 19일 프러시아의 전쟁이 일어나고 곧 파리가 포위되자 공연도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8월 31일 파리 오페라 극장이 폐쇄되자 그 이틀후 안무자 셍-레옹은 심장 발작을 일으켜 4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11월 23일에는 보짜키도 17회의 생일을 맞이하고 바로 그날 천연두에 걸려 죽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코펠리우스 역을 맡았던 도티 또한 세상을 떴다. 그래서「코펠리아」는 그 중요인물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그래도 파리 오페라극장은 용기를 잃지 않고 전쟁이 끝나자 곧「코펠리아」의 리바이벌에 착수했다. 보짜키가 세상을 떠나고 그란조바가 러시아로 가버린 그때 스와닐다를 맡을 사람은 최초로 물망에 올랐던 보그랑 밖에 없었다. 그런데 보그랑은 보짜키를 무색케 할 만큼 압도적인 갈채를 받아 그 리바이벌 공연도 대성공이었다.

「지젤」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고티에는 보그랑을 가르켜 카를로타 그리지와 함께 가장 위대한 역사적인 발레리나 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파리 공연이 거듭 대성공을 거두자「코펠리아」는 1876년에는 덴마크에서, 1884년에는 프티파에 의해 러시아의 역사적인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되었고, 그때부터 불후의 발레라는 빛나는 성화를 차지하게 되었다. 「코펠리아」에서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또 한가지 사실은 마주르카와 차르다슈를 역사상 최초로 발레에 등장시킨 점이다.


마주르카와 차르다슈가 코펠리아에서 너무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거의 모든 발레작품에는 디베르티스망(여흥 또는 오락성을 고조시킨 장면)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덧붙여지게 되어, 거기서 각종 민속무용이 선보이게 되었다. 코펠리아는 뛰어난 음악, 풍요로운 춤, 인형을 소재로 반전을 거듭하는 극 전개, 19세기의 시대상이 엿보이는 희극발레라는 특징을 안고 초연 후 세계 각지에서 인기 레퍼터리로 공연된다. 현재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본토의 「코펠리아」가 셍-레옹의 직계인 반면 영국, 미국, 러시아는 제정 러시아 시대 마린스키 극장의 예술감독인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를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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