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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발레 - 대한민국 대표로 하는 국립발레단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입니다.

스파르타쿠스 Spartacus

스파르타쿠스 포스터이미지
원작
무대
사이몬 바르살라즈(Simon Virsaladze)
의상
조명
미하일 서칼로프(Michail Sokolov)
소요시간
2시간 5분
공연년도
2001년. 국립발레단. 예술의전당
[개요]

기원전 1세기 크랏수스 대저택의 향연. 두명의 검투사가 눈이 가리운 채 한명이 죽을 때 까지 싸운다. 최후의 승리자는 바로 스파르타쿠스. 자신과 같은 포로를 죽였다는데 충격을 받은 스파르타쿠스는 자유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노예 검투사들과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전 세계를 정복하려는 크랏수스와 그의 애첩 예기나의 계략으로 반란은 실패한다.

로마 제국시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발레는 1956년 야곱슨, 1962년 모이세프가 안무하였으나 오늘날까지 널리 공연되는 것은1968년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이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대규모의 남성 군무는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볼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이고 탁월한 장면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01년 8월, 국립발레단은 동양권 발레단으로는 처음으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이 작품을 공연했다.

‘한국에 스파르타쿠스가 있다’라는 말로 이 작품의 공연을 수락한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1968년 공연 당시 막시모바와 함께 프리기아에 더블 캐스팅 됐던 나탈리아 베스스메르트노바와 함께 65일간 한국의 무용수들을 직접 지도했다. 이 공연은 ‘한국 발레의 새로운 장을 연 걸작’으로 평가받았으며 2001년 한국 무용계의 큰 이슈로 떠올랐다.


[대본]

<스파르타쿠스>를 발레로 만들려는 움직임은 1930년대 초반, 소비에트 시대였다. 그때는 역사적이고 혁명적인 주제의 예술 작품들이 어떤 이념적인 목적 아래 권장되던 시대였다. 유명한 대본가였던 니콜라이 볼코프(nickolai volkov)는 볼쇼이극장을 위해 스파르타쿠스에 관한 발레를 만들려고 했다.

그는 발레를 위해 플루타크(plutarkh)가 지은 고대 로마의 영웅 전기와 그 시대의 삽화들을 세심하게 공부했다. 세명의 주요 인물은 로마의 장군 크랏수스, 트라키아 태생의 노예 스파르타쿠스와 발레에서 프리기아로 불리는 그의 부인이다. 그는 실화에 없던 다른 인물들도 창조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크랏수스의 정부로 나오는 예기나이다. 1년만에 완성된 대본은 공연으로는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문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곡]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aram khachturian)은 볼코프의 대본에 흥미를 느끼고 1940년대 초반에 작곡에 착수한다. 이 작업은 여러가지 이유로 오랜시간이 걸렸고, 하차투리안이 작곡을 끝낸 것은 1954년이었다. 작곡을 완성한 하차투리안은 "나는 스파르타쿠스를, 인권을 얻기 위해 힘차게 몇번이나 일어선 노예들의 반란을 그린 불멸의 벽화라고 생각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하차투리안은 소비에트의 작곡가였지만 사실 구소련에 합병된 약소 민족 아르메니아의 후예이다. 그 자신이 해방을 갈구했던 약소민족의 후예이기에 이 작품에 대한 남다른 연민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출생 내력 때문에 그의 음악은 원시적인 힘의 박진감 뿐만 아니라 그와 대조적인 토속적인 슬픔의 정서가 어우러진다.

하차투리안은 발레라는 예술은 인간의 다양한 삶과 정신적인 경험으로 충만한 대단한 예술이기 때문에 작곡가는 음악적인 극작가(musical playwright)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할 만큼 발레 예찬론자였다. 음악이 계속 진행되면서 그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음악적 변화는 그의 발레 음악이 무대, 메시지, 인물들의 성격을 얼마나 세심하게 나타내는지를 보여준다.

<스파르타쿠스>는 하차투리안 음악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공연을 볼 때 나는 작곡가로서 영웅의 이미지, 진정한 열정, 사회적인 갈등에 매료된다. 그중 <스파르타쿠스>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라고 말한 하차투리안은 이 곡을 위해 이태리를 방문하여 고대 로마 시대의 그림과 조각, 노예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개선문, 수많은 검투사들이 죽어갔던 콜롯세움들을 돌아봤다. 하차투리안은 콜롯세움의 돌을 가져와 책상위에 올려놓고 보면서 자유와 해방의 상징인 영웅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를 작곡했다.

이렇게 탄생된 <스파르타쿠스>에는 주요 인물들에게 부여된 각각의 음악적인 주제 이외에 로마나 노예들을 상징하는 큰 주제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다. 예를 들어 로마 군인은 웅장하고 무거운 분위기, 검투사들은 영웅적이고 극적인 분위기, 권력자 크랏수스는 과장되고 과격한 분위기, 스파르타쿠스는 고결하면서도 투쟁적인 분위기, 크랏수스와 예기나의 2인무가 떠들석하고 들뜬 분위기라면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의 2인무는 부드럽고 시적인 분위기로서 표현되고 있다. 이런 대조들이 발레의 극적인 갈등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초연]<스파르타쿠스>의 초연은 1956년 레닌그라드 오페라발레시어터(마린스키 키로프 발레단)였다. 안무를 맡은 이는 탁월한 안무가이자 제작자였던 레오니드 야콥슨(leonid yakobson)이었다. 그는 소비에트 발레의 영원한 반체제파인 그는 풍부한 역사성이 담긴 작품을 창작했었다. 야곱슨의 이 버전은 약간 개정되어 1962년에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그때 마야 플리세츠카야(maya plisetskaya)가 프리기아를 춤추어 성공을 거두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는 볼쇼이의 세번째 버전이다. 첫번째는 1958년 이고르 모이세프(igor moiseev)가 안무한 것인데 초연한 후 금방 사라졌다. 볼쇼이의 두번째 <스파르타쿠스> 버전인 야콥슨의 안무도 오래가지는 못했다.[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의 탄생]유리 그리가로비치 안무의 <스파르타쿠스>가 초연된 것은 1968년 4월 9일. 이날의 스파르타쿠스는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vladimir vasiliev), 크랏수스는 마리스 리에파(maris liepa), 프리기아는 예카테리나 막시모바(yekaterina naximova), 예기나는 니나 티모페예바(nina timofeeva) 였다. 이날 이후 그동안의 틀에 박힌 발레의 모습은 모두 해체되고 발레에서 ‘영웅적 낭만주의’라는 장르가 새롭게 탄생되었다. 이 발레의 주인공은 솔리스트 개인 뿐만이 아니었다. 이미지를 내포하는 구조, 솔리스트와 군무간의 상호 연관, 화려하고 다양한 구성 속에 배치된 고전적인 춤들 자체가 바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는 주역들의 독백과 2인무 그리고 군무를 통해 감정과 이성, 위대함과 힘이 함께 깃든 고전발레이다.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기존의 대본을 바꾸어 주역들에게 각각의 심리 상태를 자세히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전형적인 고전발레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들을 창조한다. 1968년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를 춤춘 주역들의 춤을 보면, a 캐스팅이었던 바실리예프의 스파르타쿠스가 이상주의자였다면 b 캐스팅이었던 미하일 라브로브스키(mikhail lavrovsky)의 스파르타쿠스는 용맹스런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마리스 리에파가 춤춘 크랏수스의 ‘반 영웅 anti-hero’적인 캐릭터는 눈이 부실만큼 훌륭했다. 이들 빛나는 남성 무용가에 의해 탄생된 이미지는 강하고 교활한 창부 예기나를 맡은 티모페예바와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프리기아를 선보인 막시모바, 보다 비극적인 프리기아를 표현한 나탈리아 베스스메르트노바(natalia bessmertnova)가 이룬 여성 발레의 경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리가로비치가 <스파르타쿠스>를 안무하던 이 시대는 볼쇼이 발레단 사상 최고의 무용가들이 포진했던 이른바 ‘스타들의 황금시대’였기 때문에 그리가로비치는 안무할 때 자신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무용가들의 개성과 잠재력을 존중했다. 그러므로 <스파르타쿠스> 초연 공연에 참여했던 두 캐스트는 같은 역할을 하면서 서로가 동등하게 위대했지만 완벽하게 다른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스파르타쿠스>는 무용가들의 역량에 따라 그 이미지가 바뀌기도 했다. 이 공연에는 보통 두명의 영웅이 나온다. 때에 따라 승리를 자축하는 크랏수스 혼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스파르타쿠스 혼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교활하지만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예기나가 주목을 끄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녀는 인생에서 마치 장기 게임 하듯이 다른 사람들을 솜씨있게 다룬다. [감상 포인트]발레의 첫 장면은 어둠속에서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그 중심의 꼭대기에는 크랏수스가 있다. 그 형상은 지상에서의 힘, 이교도적인 우상 숭배,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숭배를 나타낸다. 발레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피라미드 이미지가 나타나는데 첫 장면의 그것과는 아주 다른 성격의 것이다. 그 꼭대기에는 참수당한 스파르타쿠스의 몸이 매달려 있고 조명이 그를 비춤으로써 그가 우리 모두를 빛과 자유로 인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불행히도 빛과 자유는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대신에 천상에서 그 보상을 받고자 한다. 발레가 진행되는 내내 스파르타쿠스가 끊임없이 공중으로 도약하며 싸우는 것이나 마지막 레퀴엠 장면에서 군중들이 두 손을 높이 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뚜렷하게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다채로운 색깔의 성격들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무가는 마치 신의 입장에서 어떤 때는 전쟁과 애욕을 숭배하는 크랏수스의 모습을 비추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외롭고 영웅적인 이상주의자 스파르타쿠스를 비추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들 내면에는 스파르타쿠스로 상징되는 기독교적인 숭고함과 크랏수스로 상징되는 이교도적인 욕망이 함께 있다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 스파르타쿠스가 죽는 마지막 장면은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박혀 죽는 모습을, 마지막 레퀴엠에서 프리기아를 스파르타쿠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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