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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발레 - 대한민국 대표로 하는 국립발레단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입니다.

세헤라자데 Scheherazade

세헤라자데 포스터이미지
원작
무대
레옹 박스트 (Leon Bakst)
의상
조명
소요시간
공연년도
1983년 10월 국립극장
식민지 경영으로 부를 이룬 유럽 국가들의 귀족과 부르주아들은 소일거리가 필요했고 그들이 예술에 관심을 돌리던 시점에 등장한 발레 륏스가 유럽 사회에 끼친 영향은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디아길레프의 발레 륏스는 20년동안 유럽의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다양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 광범위한 영향력 중에 패션과 건축까지 전방위로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이 작품 「세헤라자데」 이후에는 없다.


화려하고 대담한 원색의 향연.「세헤라자데」를 표현하는 수많은 형용사 중에 하나지만 이것만큼 그 영향력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없다. 페르시아와 인도 등 아라비안 나이트의 무대가 된 국가의 미술적인 특징이 반영된 원색적이고 화려한 색채의 의상과 동양적인 신비로움을 간직한 무대장치는 파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쏟아넣었다.


「세헤라자데」초연이 있은 뒤 20년이 지난 1931년 에밀 블랑슈가 프랑스의 예술잡지 조형예술에「세헤라자데」가 미친 영향을 논하면서 그 영향력이 의상 제조업자, 실내 장식가, 보석 세공인 등 데코레이션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밤이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유행에 민감한 파리 뿐 아니라 영국에서조차 이 발레의 공연이 있은 뒤 패션, 액세사리, 건축, 인테리어까지 모든 분야에서 세헤라자데 풍이 풍미했다. 현대에도 한번씩 유행이 돌아오는 퀼로트 스커트나 하렘 팬츠도 「세헤라자데」의 영향에 의해 패션계에 등장한 것이다.


디아길레프는 1909년 발레 륏스의 시즌을 장식할 새로운 발레음악을 찾고 있다가 브느와에게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 음악 「세헤라자데」를 발레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는다. 브느와는 「세헤라자데」의 무대가 바다가 아니라 하렘이 되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제안이 포킨느, 박스트에게 받아들여져 「세헤라자데」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곡과 전혀 다른 플롯으로 재창작 되어 무대에 올려진다.


사실상 이 발레의 플롯과 리브레토를 제공한 브노와는 프로그램에 자신의 단독 작품이라는 것을 밝혀주지 않는다면 발레 륏스를 떠나겠다고 디아길레프를 위협해 약속을 받아냈지만 공연의 막이 올랐을 때 프로그램에는 박스트와 포킨느의 이름이 오르고 이 작품에 대한 그의 공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디아길레프는 3악장이 춤추기에 적합치 않다고 삭제했기 때문에 1,2,4악장을 바탕으로 술탄 샤리아르(sahariar)와 그의 아름답지만 부정한 왕비 조베이데(zobeide), 술탄의 야심만은 동생 샤제만(shahzeman)의 이야기가 발레로 만들어진다.


「세헤라자데」의 초연은 1910년 6월4일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있었는데 이때 사육제, 이고르 왕 중 폴로베츠인의 춤과 함께 시즌 개막프로로 올려졌다. 이 작품은 순수 발레라기 보다는 댄스 드라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세헤라자데」의 작곡가인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 공연 있기 2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만약 그가 그떄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이 작품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순수 발레가 아닌 작품에 자신의 음악이 사용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미망인도 발레 륏스가 이 곡을 댄스 드라마로 만드는 것을 반대했고 3악장 생략에는 특히 거부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발레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난 뒤 그녀의 비판은 묻혀 버렸다.


초연 때 왕비 조베이데를 사로잡은 황금노예 역은 니진스키가 맡았었다. 발레 륏스 첫 시즌부터 니진스키의 존재는 절대적이었지만 이「세헤라자데」는 그의 존재를 발레의 황제로 인식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황금노예 역을 맡은 그의 첫날 무대가 끝난 뒤 파리 언론은 우리를 뛰처나온 호랑이 표범 등으로 그의 동물적인 동작을 묘사했다.


니진스키가 황금문 앞에 몸을 드러냈을 때 청회색으로 칠해진 피부와 대조되는 그의 흰 이빨과 팽팽하게 긴장된 그의 벗은 몸은 먹이를 향해 덤벼드는 코브라를 연상시켰다고 한다. 대본을 쓴 브느와가 머리속에서 상상했던 반은 고양이, 반은 뱀, 악마적인 민첩함을 지녔으나 여성적이고 그러면서도 전율하게 하는 공포를 가진 그 모습을 그는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샤제만의 칼에 맞아 죽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취했던 동작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물구나무 선 자세로 머리를 이용해 완벽하게 삐루에뜨(회전)를 했는데 이것은 위험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의 격렬함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때문에 나중에 그가 무사한지 확인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하니...


리아르 왕 역의 알렉세이 불카노프는 극적 표현으로 제왕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조바이데를 연기한 이다 루빈시타인. 그녀는 세레라쟈데를 위해 태어났다고 할 만큼 뛰어난 세헤라쟈데를 연기했다. 이국적이고 특이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는 큰 키에 호리호리하면서 관능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어 조바이데를 표현하는데 적격이었다. 하지만 연기력과 미모에 비해 댄서로서는 지극히 평범했다.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원해도 디아길레프는 그녀에게 춤추는 역을 허락하지 않자 다음해 발레 륏스를 떠나 자신의 발레단을 만든다. 드뷔시, 박스트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적극 협조를 했지만 그녀의 발레단은 성공하지 못했다.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당시 많은 재사들을 매혹시켰지만 그녀가 주연을 맡은 작품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세헤라쟈데의 작곡가인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이 공연 있기 2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만약 그가 그떄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이 작품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순수 발레가 아닌 작품에 자신의 음악이 사용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미망인도 발레 륏스가 이 곡을 댄스 드라마로 만드는 것을 반대했고 3악장 생략에는 특히 거부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발레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난 뒤 그녀의 비판은 묻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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